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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윈도우용 한글 에뮬레이터 '한텀', 국내 최초 그래픽 머드게임 '바람의 나라', 그리고 '리니지' 개발의 주인공, 송재경 부사장. "제 이름 곁에 따라 다니는 화려한(?) 여러 수식어보다 제가 짜 놓은 코드를 봤을 때가 행복하죠." 자신은 구루와 거리가 멀다고 말하지만, 게임 세상에 빠져 작성한 코드를 볼 때 행복함을 느낀다는 것만으로도 구루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올해로 2회째인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가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렸다. 송재경 부사장 또한 이 행사에 참석한 탓에 인터뷰를 원했던 기자는 시차를 넘나들며 20시간의 사투를 벌였다. 결국 미국 새너제이 한 호텔에서 찾을 수 있었고, 17시간의 시차에도 아랑곳없이 송재경 부사장과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머드게임으로 만끽하는 서른 다섯 살의 즐거움
"머드게임을 만들면 마치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느낌이랍니다. 어떤 세상을 창조하는 창조주의 느낌이죠.

가끔 동료와 머드게임을 만들면서 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신이 인간세계를 간섭하지 않잖아요. 악에 벌주는 일도 없고, 선인에게 선물을 듬뿍 주는 일도 없구요. 머드가 그렇답니다. 제작자가 플레이어가 나쁜 짓을 한다고 개입하면 머드 자체는 엉망이 되거든요."

서른 다섯살의 평범한 가장인 일반 샐러리맨의 입에서도 '듬뿍'이란 말이 나올까. 게임이란 공간에 파묻혀 살았던 그의 흔적이 기자에게는 자유로움으로 느껴졌다.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한 중학교 시절, 8비트 컴퓨터에서 게임 말고는 특별히 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없었다는 것이 그가 처음 게임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라고 한다.

특별한 무엇인가를 기대했던 저자로서는 의외의 답변을 받고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8비트 컴퓨터 시절부터 비즈니스 언어인 코볼로 프로그램을 짰다는 이야기보다는 훨씬 그 다운 답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시절에는 리눅스, GNU, 머드속으로 '풍덩풍덩'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거쳐 과학기술원 전산학 석사와 박사 과정이란 그의 이력에 순탄한 길을 걸어온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결코 순탄치 만은 않았다며 과학기술원 박사과정 중퇴란 얘기를 꺼내놨다. "원래 박사 과정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박사과정 중에도 논문연구를 하지 않았구요. 리눅스, GNU, 머드에 흠뻑 빠져 있었으니까요. 주변의 선배들이 그렇게 시간 보내지 말고 회사나 가라고 해서 한글과컴퓨터에 갔죠." 과학기술원 시절, 애증이 교차하는 전길남 교수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인생을 대충대충 살고 있는 나에게 새로운 측면을 제시해 준 분이죠. 좀 특이한 분이었어요. 일본에서 대학을 나와 미국에서 대학원 마치고 한국에 유닉스를 들고 왔어요. 인터넷도 일본보다 앞서 처음으로 연결했구요. 모든 것을 '거꾸로' 보는 '거꾸로'가 많은 교수님이었어요."

어느 순간 정체됐다가도 다시금 용솟음치며 세상에 뛰어들 수 있듯이 송재경 부사장은 용솟음칠 수 있던 계기를 '거꾸로' 교수로부터 얻은 것 같다.

 

"내 인생의 돌파구는 거꾸로 교수님"
"프로그래머요. 반쯤은 예술가고 반쯤은 엔지니어죠. 엔지니어링이 되려면 어떤 수학적 방법에 의존해야하는데 프로그램은 프로그래머 본인의 경험과 느낌 같은 것에 상당부분 의존하는 것 같아요.

배워서 되는 부분도 있지만 타고난 것도 있어야 한다고 봐요. 타고난 것이라면 바로 느낌이겠죠.

앞서 말한 사고의 구조에 있어 논리적 사고는 기본이지만, 그 논리적 사고를 프로그램 언어라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느낌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 타고난 느낌을 지녀야 한단 말인가.

"전 사실 공부를 해서 자신이 바라는 모습의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미술을 공부해서도 소질이 없으면 공부 수준에서 끝나고 마는 거처럼 말이죠.

테크닉을 공부할 수는 있겠죠. 아니면 이사람 저사람의 그림을 많이 보고 미술평론가가 되거나. 그래서 책을 읽고 다른 사람의 코드를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테크닉을 배울 수 있다는 측면에서) 뭔가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에 도전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소스코드는 예술작품

"한번은 자려고 누웠는데 며칠 전 속썩이던 버그에 대한 해결책이 문득 떠올랐어요.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한 탓에 다시 일어나 코딩하는 경우도 많았죠. 문제는 그러다 보면 금방 다른 문제에 부딪혀 잠자리로 다시 들어가게 되죠.

그리고 며칠씩 속썩이던 버그도 잡고 나면 금방 잊어버리고 다음문제로 넘어가게 돼 몇 시간 지나면 무슨 문제로 며칠 동안을 고생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아마도 다 공감하는 부분 아닐까요. 하지만 그런 점과 달리 프로그램을 짜고 나서 처음부터 소스코드를 쭉 훑어보면 군더더기가 없고 하나의 예술작품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코드가 완벽하게 서로 맞아 떨어져 더 추가해도 안되고 한 줄이라도 빼도 안 되는 그런 느낌이 오는 코드가 나오는 경우겠죠."

자신이 짜놓은 코드를 보면 예술작품을 감상하듯 바라보는 느낌은 과연 어떨까. 코드를 짜고 바라볼 때가 행복하다는 말, 내가 느끼지 못한 송재경 부사장의 행복한 감정이 내 몸의 피로감을 사라져 버리게 한 건 아닐까.

앞으로 아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짜면서 아들에게 프로그램을 잘 못 짠다고 구박받는 일을 상상할 때가 좋다는 35살 아버지 송재경 부사장. "프로그램만 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이런 저런 매니지먼트 일이 너무 많거든요. 아직까지도 내 마음은 개발자로만 남고 싶네요."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에 몇 점을 주고 싶냐는 질문에 80점이라고 한다. "일만 본다면 후하게 점수를 주고 싶은데요. 그 이유는 제가 짠 프로그램을 보면 만족스러운 편이니까요.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 물론 있지요. 아직 프로그래머로서 삶이 창창하게 남아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게임 프로그래밍 세상에 뛰어든 이상, 10년 후에도 게임 프로그래머로 남고 싶다는 마지막 말로 2시간의 인터뷰는 끝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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