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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tory

예전에 쓴 중국 여행 후기

chauchau0 2007. 3. 22. 02:11
 
집에서 쌓아둔 파일들이 기준없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찾고 싶어서 찾을 수 없어
7년만에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문서.!!!

대학교 4학년때 쓴 글인데..지금 보니 내용은 참신하고 (하하하하) 재미있는데..맞춤법이 장난아니다. >,.<
무의식 중에 바로 빨간 밑줄 지워 버릴려고 하다가..그모냥 그대로 올림.

아래 글 관련해서 사진 찾아볼려고 싸이월드에 들어갔었는데...옛날 사진들은 파일을 찾을 수 없다고 나온다.
쿵!!! 데이터 관리를 어떻게 하는거야!!!!!!!!! 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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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설레임과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잠자다 몇 번씩 깼었다. 처음 하는 해외 여행이라 긴장을 많이 하고 있었나 보다. 멀리 보이는 인천 공항은 새벽의 어두움을 몰아내듯이 환한 청색 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름대로 서둘러 왔지만 벌써 많은 사람들이 손수레 같은 가방을 앞에 하나씩 놔두고 둥글게 모여있었다. 모범 학생들이라 그런지 시간 약속도 참잘 지킨다. -_-;

가방을 붙이고 공항수속을 다 마치고 여행하는 내내 주접 트리오라 불리게 될 승화형, 헌필형과 같이 공항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촌스럽긴 하지만 처음 보는 비행기들이라 너무 신기해 카메라에 모두 담고 싶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는 배경에 관광지를 넣고 중심에 사람이 있는 사진 말고 한 눈에 중국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사진을 찍어야지 하는 생각을 가졌다.

처음 타는 비행기는 신기함 그 자체였다. 아름다운 스튜어디스(신기함보다는 환상적이었음), 멋지게 펼쳐지는 비행기 아래의 구름들옆자리 앉은 친구와도 인사하고 얘기도 하다가 잠깐 잠이 들어버렸는데 일어나자마자 갑자기 귀가 아프다. 침을 삼켜도 숨을 참아봐도. 사람들의 말소리는 고장 난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작게만 들리고.. 속으로는 ~’ 하고 소리 치고 싶었지만 첫날부터 어글리 코리언이 되지 않기 위해서 계속 참다 보니 어느새 땅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 일행을 처음으로 맞이한 것은 공항 안에 가득 차 있는 향 냄새였다. 중국 가기 전에 생각했던 때국 냄새보다는 훨씬 맡기 좋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공항 직원들 그리고 더 눈에 뛰는 까치집진 머리. 처음엔 .. 공항 일이 피곤해서 지금 자다가 교대하나 봐...’ 했었는데 거의 모든 사람들의 머리가 떡져있고 부시시 하다. ‘정말 때국놈은 때국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상해 공항을 빠져 나왔는데 날씨는 우리 나라의 비오는 가을철 날씨다. 공항 밖 넓은 광장에 보이는 간판들은 모두다 한자다. 확실히 외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관광버스를 타고 상해 시내에 들어섰다. 비오는 날씨라 그런지 거리에 사람들은 많이 보이진 않는다. 도로에는 외제차 일색이다. 심지어 택시까지 폭스파겐이다. 그런데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모두들 우비를 입었는데 아마 한 회사에서 단체 구입한 모양이다. 색깔만 다르고 디자인은 모두 통일이다. 신호가 걸려서 자전거들이 한 곳에 쫙 멈춰있으면 그 모습이 참 귀엽다고 해야 하나 아니 올림픽 개막식 행사의 느낌까지 준다.

상해의 모습은 서울의 모습과 비해서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그 웅장함이나 화려함에 있어서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어째 균형이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 나라 같으면 회사 건물 있는 지역이 있고 주거지역이 있고 또 부촌이 따로 있고 달동네가 따로 있는데 여기는 멋진 집 옆에 다 쓰러져 가는 집이 있다던가 고층 건물 옆에 낮고 후진 구멍 가게 같은 건물이 있다. 이것이 발전 속도를 주체하지 못한 결과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안 씻는 것처럼 남을 의식 안는 그런 성격때문인가.....

식당에 도착한 우리, 식당에도 향 냄새가 진동을 한다. 어느새 이 냄새에 익숙해졌다. 이 층으로 올라갔다. 우리는 기다리고 있는 것은 꿈에서만 보던 돌아가는 테이블.. 정말 상다리 부러질 정도로 나온 마파 두부, 닭 요리, 오뎅 볶음, 민물고기 튀김등등 중국 음식이 계속 이 정도면 별 느끼함 없이 먹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먹는 폼을 보아하니 입에 맞지 안는거 같다. 누군가 그랬다 여행을 즐기려면 그 나라 문화에 푹 빠져야 한다고, 그 나라식 음식을 이것 저것 잘 먹는 것도 여행에서 꼭 필요한 요소가 아닌가 한다. 어디 어디 관광지를 가고 어느 곳을 가보았냐 보다는 많은 사람과 얘기 해보고 많은 음식도 먹어보고 이렇게 직접 피부로 문화를 느껴야 하지 않는가 하고 생각한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 나라로 따지면 삼성동 같은 곳을 갔다. 건물이 으리으리하고 웅장했다. 우리 나라의 무역센터는 너무 평범해 보였을 만큼. 한국 IT 기업들이 중국진출을 모색하고자 개최한 쇼를 둘러 보았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적었었다. 그리고 전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면서 느낀점은 아직 본격적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한 번 시도 해보려고 온 사람들 같았다. 중국이라는 큰 물결을 느끼고 싶어서 자신들의 장비를 가지고 무작정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인 시장 계획보다는 우리 나라에서 사용했었던 그대로의 상품을 가지고 와서 보여 주고만 있었다. 이후에 LG 화장품 공장을 견학 하면서 느꼈지만 우리 나라에서와 똑같은 방식으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시장과 문화를 이해하고 기업의 이미지를 먼저 심어주거나 하는 등의 기초를 다지는 일이 많이 필요해 보였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홍구 공원이다.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사람이 없는지 관광하는 사람들은 우리들 뿐이었다. 그리고 일명 악어라 불리 우는 기념품 장사꾼 한국 돈 천원~”을 연발 하면서 홍구 공원을 나갈때 까지 쫓아 다녔다. ‘악어는 가이드 아저씨가 말해 준건데 악어가 한 번 물어 놔주지 않는 것과 손님을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쫓아 다니는 모양이 같아서 붙여 졌다고 한다. 참 잘 어울리는 별칭이다. 윤봉길 의사의 비에서 잠깐 동안 명복을 비는 묵념을 올렸다. 우리 나라의 독립을 위한 의거를 거행하신 윤봉길 의사. 일본측에서 보면 그 당시의 빈 라덴의 미국 9.11 테러보다 심한 테러로 다가갔을 행동이지만 지금 우리는 그를 기억하고 교과서에도 훌륭한 일을 하신 분이라고 배우고 있다. 일본 사람들도 홍구 공원에 관광 온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같이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느끼려고 혼을 위로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아Q정전으로 유명한 루쉰을 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어느 하나의 사건을 바라 볼 때 자신의 나라 그리고 이념, 생각에 따라 똑같은 일도 다르게 느껴지고 생각 되어지는 것을 보면 작은 우물에서 하나만 바라보면서 공부하고 살아 왔던 나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중국의 거리를 보다 보면 한 가지 특이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세월을 낚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어딘가에 등을 기대고 시선을 아무 곳에나 둔다. 그리고 어깨에 힘은 잔뜩 빼버리고 그 자세 그대로 아무 말도 아마 것도 하지 않고 돌 석상처럼 가만히 있다. 어찌 보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저런 것이 만만디 성격인가? 옆에 있는 쓰레기 치우는 도구를 보면 일은 있는 듯한데 우리 나라 사람들처럼 뭔가 하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내가 항상 바쁘게만 살아가는 한국의 서울 한폭판에서만 생활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모습은 너무나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밤이 되어서 유람선을 타고 상하이,상해의 야경을 보았다. 외국계 회사들의 건물 만한 간판들도 많이 보이고 옛날에 외국 사람들이 와서 지었다던 먼진 건물들도 상해의 밤의 야경을 더욱 빛나게 했다. 멀리서 보이는 상해의 야경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하지만 가까이서 모는 상해는 무척이나 어둡다. 이 이야기가 무엇인가 하면 중국 사람들은 모두 일찍 가게 문을 닫고 집에 들어간다. 거리엔 관광하는 우리들과 외국 사람들을 빼면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마치 배트맨의 배경이 되는 고담시처럼 스산함까지 느껴진다. 저 높은 빌딩 끝의 하늘에 쏘아 올린 조명은 마치 배트맨을 부르는 신호같이 생각도 된다.

호텔에 도착한 우리들, 호텔의 높이와 멋짐에 사진이라도 찍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쪽 팔려서 찍지는 못했다. 여행 내내 우리들은 5성 짜리 중국 최고급 호텔에서 머물었었다. 잠자리가 불편해서 잠을 뒤척인 적도 없이 너무 편하게 잘 잤다. 마지막 날 교수님께서 하신 말이 계속 생각 난다. 여러분이 35살 먹었을 땐 성공해서 이 호텔 보다 더 멋진 곳에서 머물라고. 잘못했으면 하고 혼자 크게 대답할뻔했다. 내가 진짜 더 좋은 곳에 머물 수 있을 만큼 잘 살고 있는 걸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의 내 생각은 라고 속으로 다짐해 말한 자신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음날 아저씨를 쫓아다니면서 여러 가지 중국말을 배웠다. 기사-(따거),밥 많이 먹었어요?-(니 쯔할 노마~),고맙습니다-(자자,쎄쎄), 이치 짜오샹 하오마? -(사진 같이 찍을까요?),샤오지에-(아가씨),쯘 페워량(너무 이뻐요) 등등 이중에서 여행 중 가장 많이 쓴 말은 쎄쎄와 페워량 이 두 마디만 하면 샤오지에들이 친절해 진다. 아 그리고 가이드 분께 내 이름 발음 하는 방법도 배웠다. 李이 東똥 勳쉰 이게 내 중국식 이름이다. 나중엔 친구들이 줄여서 똥쒠~ 똥쒠~ 하면서 불러서 더 친해 지는 작용을 했다.

기차로 항주에 도착한 우리는 영은사라는 절에 들어갔다. 정말 중국 사람들은 손이 큰가보다. 입구도 왠만한 3층 건물 높인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입구부터 시작되는 석벽에 잔뜩 있는 불상들은 그 숫자를 하나 하나 세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불당 안의 웅장함은 더했다. 마치 성벽 같아 보이는 담벽들과 그 눈빛 하나만으로도 상대방을 제압하고도 남을 만한 사신들의 모습은 정말 중국의 사찰의 거대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사신들의 눈빛을 아래서 내려 받으면 마치 사신이 이 놈~ 너는 무슨 죄를 지었었느냐! 어서 고하고 깨끗한 몸으로 대중전으로 가지 못할까!!” 하면서 큰 숨을 내뱄으며 말하고 있는듯한 착각도 든다.

가장 웅장함을 떨쳤던 것은 대웅전에 있는 어마 어마한 크기의 불상 이었다. 그 크기에도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고 눈을 들어 쳐다보기가 마치 평소에 맘에 두던 이쁜 여자 흘겨 보는 듯이 민망했다. 대웅전에서 앞의 불상의 웅장함에 놀랐다면 대웅전의 뒷 모습은 나에게 이곳에는 화려함과 미려함도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108의 불상이 모두 다른 얼굴과 표정으로 환상적인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멋진 곳을 추천하라고 하면 자금성도 아니고 만리장성도 아닌 영은사다. 지금도 다시 한번 중국에 갈 기회가 된다면 영은사의 불상과 사신들의 웅장함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다음 번에 몰래 찍더라도 사진도 많이 찍어야 겠다. 사진 찍지 못하게 한다고 못 찍었더니 후회가 된다.

LG 화장품 공장의 견학은 중국 사람들의 또 다른 면과 중국에서 일하는 멋진 한국인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공장장님의 말에 의하면 만만디로 대표 되는 중국사람이지만 일을 가르쳐주면 원리원칙을 잘 지키고 순수하고 기만한 사람이 중국 사람이라고 하셨다. 마치 우리 나라의 80년대의 모습 같다고 하셨다. 공장장님의 화장실 청소까지 직접 하시면서 현지인들과 신뢰를 쌓아갔다는 이야기는 성공시대 같은 곳에서 느껴지는 것보다 더 멋지게 보였다.


그리고 다음날, 어제의 피곤함으로 정신이 없었는지 호텔에 장갑이며 목욕용품이며 스웨터까지 잘 모셔두고(잃어버리고) 다음 관광지로 향했다. 호구산에서 중국의 피사의 탑이라고 불리 우는 호구탑도 보고 중국의 4대 정원이라는 졸정원도 바삐 둘러 보았다.

 아이들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우리 나라 아이나 외국 아이나 귀여운건 똑같은거 같다. “크아이(귀엽다)” ,“크아이하면 부모님이 더 좋아한다. 너무 귀여워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삼성전자를 방문했지만 느낀 거리곤 삼성 인들의 자부심과 칼같이 잘 다려진 와이셔츠뿐이었다. 무성히 하다고 해야 하나 준비가 많이 안되어 있었던 것 같은 인상이었다. LG 화장품 공장과는 많은 비교가 됐다.


 다음날, 예원 관광을 하고 계림을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는 언제 세척했는지 상당히 누렇게 보였다. 심지어 자리의 안전벨트도 쑥 하고 힘없이 빠져 버리기 까지 했다. 그런데 더 특이한 점은 스튜어디스의 반응이다. 그냥 별 표정의 변화 없이 당연하다는 듯 그냥 자리 바꿔 앉아요 하는 말뿐이었다. 역시 중국민족의 기질인가? 대범, 대담?

 ..드디어 말로만 듣던 계림이다. 천하제일 산수 계림. 여행 오기 전에 가장 기대가 되었던 코스였다. 그런데 기대가 크며 실망이 크다고 했던가. 계림은 좀 실망스러웠다. 처음 보는 다양한 모양의 돌산을 보면서 신기해 했는데 시간이 조금 흐르자 지겨워 졌다. 아니 어쩌면 더 멋진 우리 나라의 설악산이 떠올라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계림에서 처음으로 가이드 없이 친구들끼리 호텔을 빠져나가 야시장에서 기념품을 사러 돌아 다녔는데 너무 기억에 남는다. “꾸이(비싸요)” “꾸이이러면서 값을 흥정 하는 것이 왜 그렇게 재미있던지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

 계림의 다음날, 여행 중 최고의 강행군이 아니였을까? 관암 동굴도 가고 상비산, 칩채산 리고 이름 모를 이상한 소수민족 박물관등 힘들게 여기 저기 많이 돌아다녔는데 기억 남는 것도 별로 없다. 아마 가이드 분이 친절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는거 같다. 힘든 관광을 마치고 북경으로 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저녁에 도착한 북경은 간판만 한문으로 쓰여진 서울이었다. 차도 많고 거리에 사람도 많고 건물도 많고 무언가 도시의 교칙이라는 것이 있는 곳 같았다.

북경에서의 23일 동안 서태후의 별장 이화원, 경극&서커스, 만리장성, 정릉, 파쓰가게, 자금성등 많은 것을 보았다. 북경에서 느낀 점을 한 글자로 표현하자면 . 大도 아닌 太다. 이화원이나 자금성등은 그냥 크다 라는 말론 부족하다. 북경에는 옛날의 유적도 크지만 지금 신축하거나 지어진 건물들도 모두 크다. 지구 밖에서 보이는 유일한 인간이 만든 것은 만리장성 뿐이라는데 크다는 말이 부족함을 느낀다.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하는 여행에서는 그 분명한 이유에 해당하는 목적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나 스스로의 여행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가지지 못하고 떠나왔던 것이 많은 후회가 된다. 그래서 북경에 있었던 시간 내내 한 달 정도만 더 머물고 싶다는 아쉬움도 나온거 같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그 나라 말도 배우고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가서 배우고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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