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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 게임의 극적 스토리 텔링

 

소설, 연극, 이야기 등과 같은 선형적 포멧이 보다 다중 형태적이고 참여적이 되어감에 따라 새로운 전자 환경은 이들에 알맞는 서사적 포맷을 개발시켜 왔다. 하지만 디지털 서사에서 최대의 상업적성공과 창조적인 노력은 지금까지 컴퓨터 게임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노력의 대부분은 좀더 정교한 그래픽 효과와 화면 속도를 높이는 데 바쳐졌으며 게임 플레이어들이 현실감 있게 묘사된 적을 바로바로 죽일 수 있는 손맛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게임은 서사성이 빈약할 뿐만 아니라 종종 다른 매체로부터 차용되었거나 상투적이고 거칠게 그려진 캐릭터에 의해 제공된다. 이같은 서사적 빈약성은, 게임 <모탈컴뱃>에 나오는 ??? <슈퍼 마리오>에 나오는 마리오 형제들처럼 열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캐릭터들조차도 성공적인 영화의 주인공으로 발탁되기는 어렵게 만든다.

 

  사실상 미로에 기반한 수많은 게임들에서, 이야기는 그 게임 자체와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 예컨대, 'X-맨'의 팬인 한 십대 청소년은 <클론 전쟁> 게임의 캐릭터가 사악한 페이랭크스 군대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장면이 흥미롭긴 하지만, 그 스토리의 줄거리 자체가 게임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된다. 침략으로부터 지구를 구해야 하는 임무를 띠도록 만드어져 있다. X-맨은 지구 주변의 위성 요새에 살고 있는 마그네토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가 마그네토를 만나기 위해서는, 여러 국가들이 페이랭크스 군대에 함락당하고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먼저 마그네토의 군사들과 살인적인 미로 게림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 게이머는 "내가 이 녀석들을 왜 죽여야 하지? 우린 서로 힘을 합쳐야 되잖아"라고 생각하게 된다. 게임 개발자는 게이머가 게임의 절정에서 페리랭크스 군대와 싸우게 만들기 위해, 쓸모 없는 살인 행각을 벌이는 스토리를 수반시킨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이 대개 그렇듯이 <클론 전쟁>의 풀룻은  미로 레벨들 사이에서 짤만란 텍스트로 된 스토리가 나타나게 되어 있는데, 10개 게이머들은 대부분의 전투 게임 게이머들처럼 이야기 부분들을 그냥 건너 뛴다.

 

 전자 퍼즐 게임들은 전투 게임보다는 덜 폭력적이다. 그리고 이런 게임을 하는 사람은 마술 레버의 작동법이나 비밀 열쇠가 있는 장소를 알아내야 하기 때문에, 게임에 몰입하게 되는 속도도 비교적 느린 편이다. 물론 퍼즐 게임은 전투 게임처럼 서사성보다 게임자체를 중시하지만, 보다 수준 높은 서사적 만족을 선사하기 위해 오히려 이런 느린 속도를 이용한다.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텍스트에 기반한 <행성 사전(Planetfall)>(Infocom, 1983)이라는 어드벤쳐 게임에서, 당신은 폭발직전의 우주선 '화인스타인'호의 선장 역할을 맡게 된다. 극도로 황폐한 어느 행성에 착륙하게 된 상황에서, 여기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오래 목숨을 부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한 버려진 연구소 속에서 당신은 문득 '플로이드'라는 고장난 로봇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로봇을 고칠 수만 있다면, 당신은 곧 이곳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이 이 당황스럽고도 위험스런 세계 내의 어느 곳으로 가든지 간에, 플로이드는 항시 당신을 따라다니며 애교를 부리며 말을 걸고, 관심을 끌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공놀이를 함께 하거나 여러 가지 정보와 잔심부름도 제공해 준다. 플로이드와 함께 온갖 모헙들을 치룬 뒤, 담신은 몹시 위험한 장비가 들어 있는 방사능 연구소의 문전에 다다르게 된다. 이문의 내부에는 아주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위험스러운 돌연변이 생물체가 도사리고 있다. 그것의 아우성을 들으며 당신이 문 밖에 서 있을 때, 플로이드는 "플로이드가 들어갑니다"라고 말하고는 당신이 미처 저지할 틈도 주지 않고 특유의 어린애 같은 충성심으로 그 위험한 방 속으로 돌진해 들어간다. 그리고 자신의 임무를 마친 후, 마치 피를 흘리듯 기름을 흘리며 당신의 품 안에서 죽고 만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게임은 재미있는 퍼즐에서 극적인 경험으로 전환된다. 행성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목적은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지만, 플로이드라는 친구를 잃은 참여자는 이제 외로움과 살아남은 자의 비통함 속에 쌓이게 된다.

 

 이 게임을 한 지 몇 년이 지난 후에 도 참여자의 마음 속에는 플로이드는 로봇의 고귀한 희생 정신이 생생히 기억될 것이다. 이 게임에서 참여했던 한 20대 청년은 내게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그는 절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했습니다." 설령 이 로봇을 그다지 인격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당신이 그 방의 앞에 다다르자, 그는 당신을 구하기 위해 그 안에 들어갑니다"), 그의 뜻밖의 희생에 경이감을 표현한다. 이리하여 플로리드의 죽음은 퍼즐 게임에서 표현력 있는 서사예술로 나아가는 하나의 작은 이정표가 되었다. 이것은 컴퓨터 스토리의 몰입하게 하는 힘을, 고도의 기술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나 고가의 제작비를 들인 비디오 상연물이 아니라 그러한 극적인 순간을 그려내는 데 의존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몇며 게임 고안자들은 게임의 극적인 힘을 끌어내기 위해 영화의 제작 기술을 활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시디-롬 게임인 <미스트(Myst)>(1993)는 그것이 발휘하는 몰입적 힘의 상당 부분을 정교한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서 달성해 낸다. 나뭇가지 사이를 통과하는 바람소리나 해변의 파도치는 소리 같은 자연 음향을 사용함으로써, 판타지 세계의 리얼리티를 높이고 영상들간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참여자의 조작에 따라 개개의 사물들은 '핑'소리나 '쾅쾅 때리는' 소리, 혹은 '윙윙 도는' 소리 등을 내며 한층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이 게임에서 불길한 요새의 은신처를 따라 이리저리 걷다보면, 걸음을 .......................중략...............

 

 게임들이 이들이 현재 이용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극적 체험을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중략...........

 

 비록 경제적.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오늘날 상업적인 전쟁 게임이나 퍼즐 미로 중심의 게임 산업이 크게 변화되지는 못할지라도, 보다 정교한 기술과 아이디아를 가진 게임 개발자들이 헉슬리의 '필리'와는 다른 극적인 감동과 인간적 의미를 전해줄 수 있는 이야기, 즉 게임 <행성 사건>에서의 플로이드의 죽음과 게임<미스트>에서의 살인 사건이 모종의 의미를 가지는 것처럼, 그리고 아케이드 게임에서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폭력성의 노출이 내게 의미 있었던 것처럼,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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