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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는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운이 없게도, 혹은 표면에 나서기를 자처하지 않는 숨은 실력자를 발굴해 소개하는 10부작 연재기획을 마련하고 있다. 오케스트라 교향악단과 같은 게임개발의 구성원들 중에서 특출난 누군가를 새로이 꼽아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쨌든 나름대로 해당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숨겨진 명인개발자 10人’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와 또 개발 지망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들어봤다.

<제 2회> “게임디렉터의 꿈” 판타그램 KUF: 크루세이더 제작자 이현기

국내에도 비상한 실력을 가진 개발자들이 많다. 하지만 자신의 열정을 자신이 쏟고 싶은 곳에 쏟는 개발자는 현재의 국내게임산업에 찾아보기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개발자 본연의 문제라기보다는 획일적인 온라인게임만을 추구하는 국내 게임제작행태를 먼저 꼬집을 일이지만 어쨌든 아쉬울 마음 가눌 길이 없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게임개발자 이현기 씨의 행보는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영광 아닌 영광을 뒤로한 채 칠흑 같은 암흑기를 거친 그는 따뜻한 밥상을 항상 뒤로한 채 끊임없이 ‘위험’을 감수해왔다. 불모의 땅과 다름없었던 한국에서, 그 어떤 경험도 없는 40여명의 개발진을 이끌고 ‘킹덤언더파이어: 더 크루세이더’의 신화를 이룩해 낸 지금, 그는 다시 가시밭길을 향해 발걸음을 떼려한다.

 

그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학기술원 출신으로 좋은 직장을 포기하고 제작자의 길을 선택한 이현기 씨. 그는 1990년대 초반 국내게임개발의 선봉장에 서있는 대다수의 메인개발자들이 그랬듯 PC통신(Kortel, Hitel 등)의 게임제작동호회를 통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시 여러 장의 메카닉 일러스트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던 이현기 씨는 사실 그림을 장기로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쌓아왔던 프로그래밍, 다양한 게임플레이경험을 토대로 구축한 기획력, 취미생활로 즐겨오던 음악제작 등 실상 게임개발에 필요한 모든 요건을 갖추고 있었던 그가 그림을 선보인 이유는 대학시절 길지 않은 시간동안 자신의 생각을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수단이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취미삼아 선보였던 일러스트 덕택에 그는 소프트액션에 발탁, 파트타임으로 횡스크롤 슈팅액션게임 ‘폭스레인저 2’의 배경화면제작을 담당하게 된다. 게임의 성공여부를 떠나 그 경험은 게임개발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가져오고 그의 미래를 설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이후 학교생활에 충실했던가 싶더니 결국 그는 1996년 직접 스튜디오 자코뱅이라는 게임회사를 단 둘이서 설립하며 당시 업계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이 때 저주받은 명작이라고 불리우는 어드벤처게임 ‘디어사이드 3’가 탄생하고 황금빛 미래가 펼쳐질 것만 같았던 그의 미래도 어둠 속에 가리워지기 시작했다.

▶ 디어사이드 3

철학적 내용과 컬트적 이미지로 지금도 많은 게이머들에게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디어사이드 3는 일부 외주작업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이현기 씨와 그의 후배 둘이서 1년간 고심한 끝에 등장한 작품이었다. 프로그래밍을 제외한 사실상 모든 작업을 도맡았던 이현기 씨는 이 때 그가 펼치고 싶었던 모든 꿈을 게임에 쏟아 부었다고 회상한다.

“결국 게임은 실패했습니다만 제가 하고 싶은대로 하나의 게임을 완성시켰던 경험은 개발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는데 상당한 경험이 됐습니다. 철학적 메시지와 끊임없이 왜곡되는 게임스타일은 의도된 바지만 게이머에게 강요하는 정도는 아니었죠. 제 의도를 이해하면 이해한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냥 게임을 재미있게 즐겨달라는 마음으로 제작한 작품이었습니다”

너무 앞서나간 탓일까? 그의 이야기대로 디어사이드 3는 그다지 좋은 판매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리고 회사를 옮긴 5년간 이현기 씨는 결코 회상하고 싶지 않은 암흑(?)같은 개발사에서 허송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어디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 현재는 문을 닫은 개발사죠. 정말 나락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은 일상의 나날이었으나 저를 믿고 따라온 친구들을 위해 혼자 몸을 옮길 순 없었습니다.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그래도 세상 일이 모두 제가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어떤 시련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는 뚝심을 길렀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찾을 수 있겠죠”

그리고 잠재되어 있던 그의 실력은 2001년 판타그램으로 이적을 옮기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알고지낸 판타그램의 이상윤 대표로 회사를 옮긴 그의 직책은 킹덤언더파이어의 후속작 ‘더 크루세이더(이하 KUF2)’ 디렉터겸 프로젝트 총괄이었다. 이현기 씨의 실력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이상윤 대표일 뿐이었기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프로젝트 리더를 두고 회사 내부에서는 많은 말들이 오고갔다고 그는 회상한다.

“왠 낙하산이 날아왔느냐는 반응이었죠. 게다가 실력도 검증되지 않은 생판 모르는 사람이 프로젝트를 총괄한다고 하니 저 같아도 그랬을 겁니다. 위기감을 느꼈지만 그렇다고해서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5년간 어둠의 세월(?)에서 쌓아온 두꺼운 철판 때문이랄까요(웃음). 팀원에게 저의 실력을 검증하고 비전을 제시해주기 위해 한달간 KUF2의 프로토타입을 만들기 위해 혼자 밤낮을 지새웠습니다”

그래픽과 프로그래밍, 기획, 사운드제작에 이르기까지 그가 지난 10년간 쌓아온 경험을 총동원해 제작한 KUF2의 프로토타입은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던 개발팀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그가 혼자 제작한 프로토타입은 KUF2의 완성된 버전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개발은? 그 이후부터 당연히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게임디렉터로서의 소양 “균형감을 맞추는게 생명”
그가 판타그램에서 맡고 있는 직책은 디렉터다. 이현기 씨는 사실상 모든 분야를 섭렵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디렉터가 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할 소양은 아니라고 그는 설명한다.

“디렉터는 게임의 비전을 제시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관리하며 최종목표까지 인도하는 역할입니다. 영화에서의 감독이라고 표현하면 적절하겠죠. 아무런 경험도 없이 갑작스럽게 입봉하는 감독을 스태프들이 잘 따르지 않듯 게임개발에 대해 어느정도의 경험은 있어야 맡을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젝트의 일정관리를 맡는 프로듀서와 비슷한 부분이 있어 디렉터가 PD를 겸하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다르죠.

영화감독에게 따로 담당하고 있는 전문분야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좀 난감한 질문이겠죠. 시나리오나 촬영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분야를 어느정도까지는 파악하고 있어야하듯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각각의 분야에 대해 어느정도 이상의 소양은 갖추되 깊게 알 필요까진 없습니다. 전문분야를 맡고 있는 팀원들의 역할까지 침범하는건 디렉터로서의 역할이 아니죠"

KUF2의 제작에서 그가 기획의 많은 부분을 관여하고 컨셉을 짜내려왔던 것은 의도한 바를 제대로 표현하는 적절한 기획자가 없었기 때문. 또 KUF2 프로젝트를 시작할 2001년 당시 판타그램의 개발진들은 3D는 물론 비디오게임개발에 대한 경험이 거의 전무한 상태였기 때문에 비전을 제시해주는 프로토타입이 주효했다고 설명한다.

“또 한가지 디렉터의 소양을 갖추기 위해 중요한 것은 ‘균형감’입니다. 모든 개발자는 나름대로의 욕심이 있죠.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적극 수용하지만 디렉터는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을 가려내는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어야 프로젝트를 무사히 완성시킬 수 있습니다. 또 개발자 개인이 좋아하는 것과 대중이 좋아하는 것은 다르기 마련이고요. 각각의 의견은 존중하되 개발자들에게 이러한 일을 납득시키고 믿고 따를 수 있게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성만을 따른다면 정체불명의 괴작이 탄생하겠죠?”

그의 개발철학
이현기 씨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게임은 울티마 시리즈(1~7편)와 폴아웃 등의 심오한 롤플레잉 장르. 하지만 그가 개발을 위해 참고하는 것은 이외로 게임이 아닌 다른 분야의 컨텐츠였다.

“KUF2의 시작은 어느 한 책글귀에서 보았단 인상 깊은 문구였습니다. ‘스위스의 창병대는  칼 한자루 들어갈 공간이 없을 만큼 빈틈이 없었다’는 단어 하나에서 시작된 것이 KUF2였죠. 그것에서 가지를 뻗쳐나가는 겁니다. 전투씬은 영화 <글래디에이터>나 <브레이브하트>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출발과 현재진행형이 PC게임과 비디오게임이듯 온라인게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개념자체가 남다르기도 하다.

“사실 온라인게임개발은 저와 전혀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너무 비약하는건 아닐지 모르겠지만 온라인게임(여기서 말하는 온라인게임은 MMORPG를 뜻한다)은 일종의 잘 만들어진 커뮤니티라고 생각됩니다. 또 우리나라는 너무 획일적으로 커뮤니티만 강조하는 형태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죠. 마케팅적인 요소도 개발에 많이 포함해야하는 등 기존의 게임제작과는 상당히 다른 분야라고 생각됩니다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울티마온라인 이후 정을 붙일만한 온라인게임이 없었다는 것도 그 이유에 포함될 수 있겠죠(웃음). 최근 들어 등장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그러한 통념을 많이 깨준 것은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즐기기도 했고 이걸 보고 정신을 많이 차려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온라인분야에 진출하지 않겠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진출한다면 비디오게임의 온라인시장 등 우회적인 방법을 선택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가 후배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은 것
마치 로봇처럼 딱딱하게 단답형으로만 질문에 대답하며 기자의 진땀을 흘리게 하다가 좋아하는 게임이야기가 나오자 금새 말이 많아지는 이현기 씨 역시 개발자에 앞서 진심으로 게임을 사랑하는 한 명의 게이머였다.

“하지만 디렉터나 기획자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게이머’에 그쳐선 안될 일입니다. 사실 게임이 개발을 시작하게 되는 동기가 될 순 있어도 개발자체에 영향을 준다고 볼 순 없으니까요. 게임만 좋아해서 나올 게임은 결국 이런저런 게임을 섞어놓은 짬뽕결과를 낳게 될 뿐입니다.

그것보다는 모든 분야를 최대한 많이 접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화에서부터 책, 음악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 있어 마니아급은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이상의 지식을 쌓는 것이 상당한 도움이 될겁니다. 디렉터라는 일은 이러한 매니악한 부분을 대중적으로 소화시켜야하는 데에도 있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디렉터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즉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많은데 그러한 의견을 전달할 수 없고 개발자에게 납득시킬 수 없는 디렉터는 몽상가에 불과합니다. 개발자를 꿈꾸는 분이 계시다면, 나아가서 디렉터라는 게임감독의 일을 맡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책을 읽고 친구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십시오.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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