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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일은 주인공과 그렇지 않은 인물들로 만들어지고 있다. 대다수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맡은 직책의 중요도와 실력으로 그 척도가 가려지기 마련이지만 미사어구라든가 언론에 의한 스타만들기 프로젝트(?)로 ‘자고 일어나보니 스타가 되어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게임이라는 분야에도 역시 다양한 방면에 걸쳐 주인공이 존재해왔다. 하지만 역사가 짧은 탓인지는 몰라도 당장 머리 속에 떠오를 만한 주인공은 수년전부터 매체를 장식해온 인물들 외에는 마땅한 추천인이 없는 것도 사실.

과거의 주인공들을 폄하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 게임시장이 수백억대의 시장으로 접어든 지금의 상황에서도 게임 1세대들만이 주인공의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장기적인 발전에서 볼 때 결코 좋은 현상이라 할 순 없을 것이다.

이에 따라 게임메카는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운이 없게도, 혹은 표면에 나서기를 자처하지 않는 숨은 실력자를 발굴해 소개하는 10부작 연재기획을 마련했다.

오케스트라 교향악단과 같은 게임개발의 구성원들 중에서 특출난 누군가를 새로이 꼽아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쨌든 나름대로 해당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숨겨진 명인개발자 10人’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와 또 개발 지망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들어봤다.

① 게임 일러스트레이터의 꿈, 엔씨 스튜디오 E&G 일러스트레이터 정준호
사실 그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일러스트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한 유명인물이다.

그런 그를 선택한 이유는 소프트맥스의 김형태 씨나 티브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이주영 씨 등 매체를 통해 자주 언급된 인물이 아닌 만큼 해당 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 외에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임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는 별개로 리니지 2 아트웍만 살펴봐도 그 저력을 느낄 수 있듯 만화적 색채를 띠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현실적 그림체 바탕 아래 독자적인 개성을 추구하고 있는 정준호 씨. 그가 생각하는 일러스트와 게임일러스트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봤다.

About 정준호: 1976년생, 서울 출신. 한성대 시각디자인학과 졸업. 현재 엔씨소프트 '리니지 2' 캐릭터디자인 및 일러스트레이터로써 활동중.

그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실 그의 그림은 회화를 그려온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탓이 크나 순수미술만으로 지금의 위치에 도달했다고 보긴 힘들다. 그림 그 자체를 좋아하긴 했지만 이쪽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겠다는 다짐은 1988년 부모를 따라 건너간 일본의 문화적 충격이 컸다.

당시 드래곤볼이라든가 시티헌터와 같은 희대의 명작들을 보며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93년 소년챔프에서 신인만화가상 공모에 당선된 후 점점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당시엔 게임 일러스트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화가의 꿈을 키워가던 그는 녹록치 않는 국내만화시장의 태생적 한계에 부딪쳐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공모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공부를 시작한 그는 군 생활 중에도 정훈공보만화 차출을 지원하는 등 그림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고분분투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소프트맥스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김형태 씨와 같은 작업실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었던 그는 이같은 인연으로 제대 후 그림소프트의 ‘소울 슬레이어즈 2’로 첫 게임작업을 경험했다. 부단한 노력으로 주니어챔프에서 만화가상 공모전에서도 당선되는 영광을 누렸으나 그는 점차 전문화되어가던 게임산업에서의 일러스트레이터를 자처하며  전문적인 소양을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1999년 그는 당시 유행하던 노트터치방식 음악게임 EZ2DJ의 백그라운드 무비 및 인터페이스 디자인작업을 진행했다.

이어서 그는 CCR의 마에스트로 프로젝트(현 RF온라인의 전신), 이소프넷의 엔에이지로 내재돼 있던 실력을 발휘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같은해 그는 아는 지인의 소개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2’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는 등 다방면에서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남다른 소양을 보여준 덕에 이제 해외에서도 호시탐탐 스카웃을 노리는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게임 일러스트의 소양 “눈속임보다는 본연의 실력이 중요”
우연치 않은 기회에 게임 일러스트라는 분야에 입문한 듯한 뉘앙스였지만 그가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주목받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오르는 덴 남다른 고초가 필요했다. 최근 들어 눈부신 기술의 발전 덕에 자그마한 손놀림에도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군 제대 후 형태(소프트맥스의 김형태 씨)가 풀컬러로 스케치에 색을 입히는 PC작업을 보고 그제서야 PC를 통한 일러스트 작업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진 않았습니다만 하나의 툴에 익숙해진 이후 그것을 기본으로 곁가지를 치는 방식으로 배우다보니 다른 부수적인 프로그램은 자연스럽게 익혀지게 되더군요”

하나의 툴을 오래도록 만지며 익숙해지는 것이 원활한 작업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하지만 그래픽툴은 미술에서 붓과 팔레트에 불과한 ‘툴’ 그 자체다. ‘툴’은 크리에이터의 능력을 발휘하는데 보다 원활한 환경을 제공해주는 수단에 불과하는 것이지 자신의 창의성은 배제한 채 툴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행위라고 그는 경고한다.



'지금 내 손안에 타블렛과 포토샵이 없다고 한탄하지 마라'

“업계에서의 실무를 위해서는 분명 원화를 디지털로 작업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아날로그방식의 그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디지털로만 그림의 세상을 이해하기엔 이 분야가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겠죠.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려보고 다시 그리는 무한의 수련을 반복한 사람들이 디지털로 작업하는 것과, 디지털이 그림의 시작인 사람과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정준호 씨가 그림 연습을 위해 주로 이용해오던 것은 특별한 준비가 필요한 종류가 아니었다.

“전 이상하게도 여성의 누드와 같은 둥그런 곡선보다는 야성미 넘치는 근육질의 남성나체가 더 끌리더군요(웃음). 이런 소재는 그냥 남성잡지나 팜플렛만 봐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런 소재로 그림연습을 해오다보니 데셍 공부를 할 때나 난이도가 높은 인체묘사를 할 때 상당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가 실무를 위해 자료를 모으는 장소는 다양하다. 시작이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인 탓에 일본색채가 강한 그림들이 많지만 그가 그려온 이미지는 순수 창작물에 가까운 결과물을 보여준다.

때문에 그는 동인활동 역시 전혀 시도해본 바가 없다고 강조한다.

“리니지 2 프로젝트에서는 영화 <반지의 제왕>으로 굳어진 판타지적인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제 자신이 변화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톨킨의 삽화집이라든가 서양권 아티스트의 작품을 많이 보고 배웠죠”

적어도 상업미술을 하려면 카멜레온처럼 변화하려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하지만 항상 현실적인 그림에 중점을 두는 탓에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개성을 찾기 위해 좀 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형태의 그림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 친구가 그리는 그림은 과장된 인체의 묘사에 매력이 있다고 표현할 수 있죠. 초기엔 그런 그림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지만 지금은 그것이 형태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됐고 국내 최고의 게임 일러스트레이터 중의 한명으로 각인시킨 예가 되었습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드워프소녀’

아무래도 리니지 2라는 대형급 프로젝트에 맞물려 들어간 일러스트인 만큼 자신만의 색채를 찾기 힘들었다는 이야기 중에서도 그는 고집으로 밀어부친 드워프 여성캐릭터에 많은 애착이 간다고 말한다.

“사실 국내 게이머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오크를 좀 더 오크답게, 다크엘프를 좀 더 다크엘프답게 그려보고픈 마음이 있었지만 제 주장이 완전히 관철될 수 없었다는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드워프 종족을 새롭게 디자인해야하는 임무가 떨어졌습니다. 서양식 설정대로라면 드워프 여성에게도 수염을 붙여 그려야하겠지만 그걸 국내게이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진 않았습니다(웃음). 그래서 지금의 귀여운 형태를 고안해 냈는데, 이를 두고 반신반의하는 의견이 많았죠. 특히 리차드개리엇이 이 그림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그가 후배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은 것
외양에서 풍기는 모습(?)과는 달리 도를 넘칠 정도의 겸손함을 갖추고 있는 그는 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개발자들이 가지고 있는 ‘아집’이라는 기존 통념을 깨기에 충분했다.

그는 “한때 개발자라는 마음에 도취가 돼서 ‘인터뷰 할 때 프로다운 면모를 보여줘야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웃음). 하지만 하면할수록 모르는 것이 많고 정말 배워야할 것이 산더미 같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엔 후배들에게 원론적인 이야기만 되풀이하게 되더군요. 이 직업을 정말로 좋아하는가? 라는 이야기 말입니다. 지금도 거품이 많은 것이 게임시장입니다. 착실한 성장이 아니 경기가 만들어낸 기형적 시장이기 때문이죠.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 역시 주위의 평가에 비해 안정된 일은 아니니 정말로 좋아하지 않으면 동경으로 흐름을 타진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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