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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100년간 축구의 플레이 스타일에 나타난 최대의 변화는 공격적 포메이션에서 수비적 포메이션으로 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창기만 하더라도 팀의 관심은 패배에 대한 두려움보다 승리의 영광에 있었다. 따라서 득점도 많았지만 실점도 많았다. 모든 것이 공격 일변도였다. 그후 감독의 작전을 중시하는 경향이 점점 생겨나고 이것이 더욱 정착되면서 무조건 적진을 돌파하는 작전은 자취를 감추고, 그 대신 포위해서 공격하는
방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양쪽 진영 모두 뒤로 물러나서 방어진지를 구축한 다음, 전선에 남겨두고 온 소수의 저격병에게 적진을 노리게 했던 것이다. 그 결과 구경하는 관중들 입장에서는 옛날의 박력넘치는 장면이 축구에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이런 경향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의 사람들은, 감독이 패배를 두려워한 나머지 겁이 많은 수비전략으로 경기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난한다. 플레이를 지난날처럼 흥분할수 있는 스타일로 바꾸고 필요하다면 감독을 전략가로서의 지배적인 지위로부터 끌어내려야 한다는 요구도 나오게 됐다. 반면에 감독들은 잘못이 있다면 승리를 요구하는 응원단에 있다고 맞선다. 화려한 공격은 못했지만 시합에 이기는 것과, 화려하긴 하지만 패하는 것중 응원단은 어느쪽을 택하느냐 하면 경기내용이야 어떻든간에 일단 이기는 것을 택한다는 것이다. 응원단이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있다는 것은 관객 동원수에 분명히 나타난다. 팀이 연승을 거둘때는 대관중이 몰려와 응원에 열을 올린다. 반대로 팀이 연패하고 있으면 아무리 경기 내용이 훌륭해도 응원단을 발은 멀어지고 클럽은 곤경에 빠진다. 입장료 수입이 오르지 않으면이사회는 감독을 비난하고 어느날 갑자기 해고시키고 마는 것이다. 감독이 직면하는 이 모순이야말로 축구가 포메이션 측면에서 오랫동안에 걸쳐 변천해온 사실을 잘 이야기해 준다.

이제 지금까지 많이 쓰여져온 포메이션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변함없는 역할이 주어져 있는 골키퍼를 제외하고 축구의 삼위일체라고 할수 있는 수비, 미드필더, 공격으로 나누어 선수를 필드위에 3열로 배치하는 것이다. 시합중에는 이 3개의 라인이 뒤섞여서 플레이를 전개하지만 소강상태, 혹은 정지했을때는 처음의 포메이션을 갖추기 위한 움직임을 보인다. 감독이 경기전에 해야할 주요한 결정은 이 3개의 라인에 선수를 몇명씩 배치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수중에 있는 선수가 10명이기 때문에 적어도 66가지 스타일을 생각할수 있다. 그 대부분은 쓸모가 없다 하더라도 축구 역사가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14개의
짜맞춤이 성공해 왔다. 어떤 포메이션이라도 감독의 입장에 놓인 사람들이 상대팀을 앞지르려고 부단히 노력을 거듭해서 새로운 형을 만들면 이전의 포메이션은 쇠퇴해 간다. 이러한 포메이션의 변천은 어떤 점에서는 계획적인 진보라고도 할수 있다. 즉 후방에 배치되는 수비수의 인원이 착실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수비수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한 사실로 본다면 축구의 포메이션사를 5개의 시대로 크게 나눌수 있다.

1명의 수비 시대
만약 현대의 축구팬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19세기 중엽으로 돌아가 시합을 구경한다면 축구가 매우 우습다고 느낄 것이다. 우선 공이 선수로부터 다른 선수에게 의도적으로 보내지는 일이 없다. 오늘날은 패스를 축구의 진수라고까지 생각하고 있지만 당시는 아직 고안되지 았던 것이다. 당시에 공격수들은 상대에게 공을 뺏기지 않는 한 오직 상대 문을 향해 돌진하려고만 했다. 라서 진짜 의미에서의 팀웍 홈은 역할 분담은 존재하지 않았다. 19세기 중엽 당시의 포메이션은 골키퍼 1명과 그를 돕은 '고독한' 수비수 1명, 그리고 공격수 9명이라는 구성이었다. 즉 1 - 0 - 9 포메이션이었다. 1860년대 말이 되어서야 9명의 공격수 중에서 1명이 후퇴했고, 1870년대에 들어서자 약체팀들이 수비를 위해 공격수 1명을 더 뒤로 물러나게 해서 공격수는 7명이 되었다. 그래서 이 당시에는 풀백 1명, 하프백 2명으로 수비를 구성하고, 공격은 센터포워드 3명과 윙 4명으로 짰다. 이 배치는 드리블 위주의 축구 시대에는 성공률이 높았으며, 축구 초기 시대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2명 수비 시대, 피라미드 포메이션
1870년이 끝나기 전에 축구에 '혁명'이 일어났다.
그곳은 스코틀랜드의 퀸즈파크 클럽이었다. 이 클럽에 소속된 어느 선수가 공을 자기편의 어느 한 선수에게 겨냥하여 패스를 하는, 전혀 새로운 방법을 도입한 것이다. 그때까지는 공을 상대에게 뺏기면 상대로부터 다시 뺏는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퀸즈 파크의 선수들은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자기편으로부터 공을 받을수 있게 되었다. 자기편끼리 공을 전후좌우로 패스함으로써 상대팀을 완전히 혼란에 빠뜨려 버렸다. 상대는 우왕좌왕해서 볼을 보고 돌진해도 볼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 있는 상태였다. 이 새로운 방법은 당시로서는 훌륭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불길처럼 다른 클럽으로 번졌다. 축구가 드리블 경기로부터 패스 경기로 변한 것이다. 그 결과 필드를 넓게 사용하게 되었으며 선수를 분산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한 덩어리가 되어 앞뒤로 돌진하기만 하던 선수들이 이제는 흩어
지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수비수 1명만으로는 공격을 감당할수 없게 되어 2명째의 풀백이 추가되었다. 그 결과 풀백 2명, 하프백 2명, 공격수 6명(센터포워드 2명, 윙 4명)으로 이루어지는 2 - 2 - 6 포메이션이 생겨났다. 패스의 기술이 향상됨에 따라 다시 공격수를 1명 더 미드필더로 내려오게 할 필요가 생겼다. 1880년대에 영국의 프레스턴 클럽은 숏패스에 능숙한 선수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는데 공격수 1명을 내려오게 해서 미드필드의 가운데를 지키는 센터 하프백이라는 새로운 포지션을 고안해 냈다. 그래서 풀백 2명, 하프백 3명, 최전방 공격수 5명으로 구성되는 피라미드 포메이션이 만들어졌다.(2 - 3 - 5 포메이션) 이것은 축구계 전체에 보급되어 약 50년동안 장수하면서 선수 배치의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공수에 균형이 잡히게 되었다. 포워드 5명이 전진해오면 하프백과 풀백의 연합 세력인 상대 수비수 5명이 이를 저지했다. 매우 효과적인 맨투맨 마크가 가능해진것이다. 이제 가장 중요한 선수는 센터 하프백이었다. 상대가 주도권을 잡으면 후퇴해서 수비수가 되지만 자기 편이 공을 가졌을때는 즉각 전진해서 공격을 지원해야만 했기 때문에 뛰어난 기술과 스태미너가 요구되었다. 조금 지나자 피라미드 포메이션에도 변형이 도입되었다. 최전선의 공격수 5명이 옆으로 일직선으로 서면 패스할 기회가 적어지기 때문에 센터포워드 3명중 2명이 자주 뒤로 처짐으로써 패스의 가능성을 높이고 공수의 유연성도 높였다.

1925년이 되자 오프 사이드 조항이 개정되었다. 그전까지는 공격수와 상대 골대 사이에 골키퍼를 포함해서 수비수가 3명 이상 있어야 되었지만 이 개정 에 의해서 오늘날과 같이 2명으로 줄었다. 이처럼 규칙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은 영국의 뉴캐슬 클럽 선수들이
교묘한 오프 사이드 트랩 전술을 쓴 것이 원인이다. 그들은 상대 공격수가 자기 진영내 깊숙이 들어오면 수비수가 재빨리 전진하여 상대 공격수를 오프사이드 위치에 빠뜨렸던 것이다.곧 다른 클럽들도 이 작전을 본받게 되어 경기의 흐름이 깨지는 일이 잦아졌다. 심판은 휘슬을 불다가 지치고 관중도 선수도 쉴새없는 경기의 중단에 짜증을 내게 되었다. 그러나 오프 사이드 규정을 2명으로 줄임으로써 득점의 기회는 그만큼 많아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득점과 실점이 많아질수록 2명 수비수의 시대는 바야흐로 종말이 닥쳐오기 시작했다.

3명 수비 시대, 센터 스토퍼
축구 혁신의 진원지는 런던의 아스날 클럽으로 옮겨졌다.
이 팀의 채프만 감독은 상대의 맹공에 대처하기 위해 센터 하프를 더 뒤로 처지게 하여 센터 백으로 바꾸었다. 그 결과 센터 하프는 종래와 같이 앞으로 돌진해서 공격에 가담하는 일이 없어졌으며, 뒤에 남아 다른 2명의 수비수 사이에 머물며 센터 스토퍼의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 기능은 말하자면 경찰관과 비슷해서 돌진해오는 상대 센터포워드를 붙잡아 골앞 중앙구역의 순찰을 하는 것이었다. 이 포메이션에 의해서 채프만 감독은 풀백 3명, 하프백 2명, 포워드 5명을 배치했으며(3 - 2 - 5 포메이션) 팀은 승승장구했다. 채프만 감독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5명 공격수중 센터 포워드 2명을 수시로
뒤로 처지게 해서 WM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포메이션을 창안했다. (공격수 5명의 배치를 잇는 선이 뒤에서 보면 W, 앞에서 보면 M자와 비슷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채프만은 이 WM배치를 구사해서 아스날팀을 8년동안에 5번이나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 비결은 상대가 공격할때 자기편 선수를 7명이나 뒤로 처지게 하는 것이었다. 아스날에서는 하프백은 물론 2명의 중앙 공격수까지 후퇴해서 단단히 수비를 굳혔기 때문에 상대는 이 장벽을 돌파하기 위해 많은 선수를 투입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많은 선수가 전선으로 나오게 되면 상대의 수비는 당연히 허술해지고, 그 순간을 이용해서 아스날은 득점을 했다. 즉 상대로부터 공을 빼앗으면 전방에 기다리고 있는 3명의 포워드에게 재빨리 긴 패스를 보낸다. 속공을 장기로 하는 윙은 일직선으로 상대방 골로 향해 돌진하여 스스로 골을 노리고 슈팅을 날렸다. 오늘날 수비를 중시하는 팀이 주로 쓰는 '허를 찌르는 방법'과 같은 것으로 이 전술은 영국 축구에 혁명을 가져왔다. 그러나 유럽 대륙이나 남미에서는 이같은 포메이션을 도입하지 않고 여전히 구식 피라미드 포메이션이 주류였다.
영국내에서는 WM 포메이션에 더욱 치중, 가운데 공격수 2명을 항상 뒤에 처지게 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하프백화를 꾀한 일도 있다. 그 결과 풀백 3명, 하프백 4명, 포워드는 불과 3명이라는 포메이션도 생겼다.

4명 수비 시대, 더블 스토퍼
1950년대에 들어서자 스토퍼를 2명으로 늘리면서 풀백을 총 4명으로 구성하는 형태가 나타났다. 이 역시 수비축구로 가는 새로운 진전이었다. 1958년 월드컵에 우승한 브라질이 사용한 이 포메이션을 계기로 더블 스토퍼의 시대가 확립되었다. 브라질 포메이션의 진수는 수비수 4명, 하프백 2명, 공격수 4명이었으며(즉 4 - 2 - 4), 2명의 하프백에게 공수 2중의 역할을 맡겼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6명의 공격, 6명의 수비가 실현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하프백은 이제 수비수인 동시에 공격수로서도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수비 중심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하프백'이라는 말대신 '미드필더'라는 새로운 용어가 축구에 도입되었다.

4 - 2 - 4 포메이션의 장점은 강력한 공격으로부터 견고한 수비로의 전환을 빨리할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이를 따르는 경향이 많이 나타났지만 2명의 미드필더에게 가해지는 중압감이 매우 컸기 때문에 채용했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한다고는 할수 없었다. 운동 능력이 매우 뛰어나고 강한 스태미너가 있는 미드필더가 없이는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축구 경기 사상 당시의 미드필더만큼 중노동과 주력, 그리고 빈번하게 역할의
수시 전환이 요구된 포지션은 없었다. 그야말로 수퍼맨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많은 클럽들은 다시 공격수를 한 사람 더 처지게 해서 미드필드의 위치에 두는 일이 옳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수비수가 4명, 미드필더가 3명, 공격수는 이제 3명으로 줄게
되었다.(4 - 3 - 3 포메이션).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수비수가 공격수보다 숫자가 많아지게 되었다. 수비 축구가 본격적으로 도래한 것이다. 이 포메이션은 오늘날에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공격수들에게 있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1960년대 후반이 되자 클럽에 따라서는 최전방 공격수를 다시 1명 더 뒤로 처지게 해서 미드필더를 4명으로 편성하는 곳이 많아졌다. 공격수 2명만으로 상대 수비를 뚫고 들어가도록 했던 것이다. (4 - 4 - 2 포메이션) 이렇게 해도 수비가 불안하다고 생각했는지 어떤 감독들은 최전방의 공격수를 1명만 남기고 1명을 다시 미드필더로 내려오게 했다. (4 - 5 - 1 포메이션)이 포메이션은 상대팀이 굉장히 강하거나 상대팀에 뛰어난 스타 플레이어가 미드필더에 포진하고 있을 경우에 오늘날에도 가끔 쓰이고 있다.

5명 수비 시대, 스위퍼
오늘날의 축구는 과거보다 더욱 더 승패에 민감해졌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수비에 치중하게 되었다. 감독들 중에는 실패를 두려워하여 이기기 위한 플레이보다 지지 않는 플레이에 치중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패배를 피하는 것이 관심사가 되면서 최대한으로 방어벽을 두텁게 했다. 이제 수비 5명이라는 형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5명중 4명은 골 주변을
지역 방어로 지키든가, 또는 특정한 상대 공격수를 맨투맨으로 마크한다. 리베로 또는 스위퍼라고 불리는 마지막 5번째 수비수는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게 한다. 그는 말하자면 안전관리자이며, 마크해야할 특정 공격수를 갖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다른 수비가 놓쳤을때 그 처리를 맡는다. 이 포지션이 각광받게 된 것은 1970년대부터이지만 도입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재정이 풍부한 팀들이 일류 스트라이커를 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었기 때문에 약팀들은 어떻게든 수비를 강하게 해야했다. 맹공을 막기 위해 수비수 4명으로 견고한 벽을 형성하고 그 뒤에 리베로를 배치해서 위험 처리를 맡게 했다. 이런 수비 모습은 '카데나치오(자물쇠)'라고 불려졌다. 그 결과 수비수는 5명, 미드필더는 3명, 공격수는 2명으로 되었다. (5 - 3 - 2 포메이션)이 극단적인 수비 위주의 포메이션은 당연히 많은 비난에 시달렸다.
축구계의 대가들은 "불길한 카데나치오"라고 부르기도 하고 "카데나치오가 이탈리아 축구 전체를 오염시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비난이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엄격히 봤을때 이 포메이션은 충분히 효과가 있는 것이었으며, 다른 나라에도 파급돼서 1970년대에는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일부 클럽에서는 더 한층 수비에 철저한 배치를 한 예도 있다. 공격수를 1명만으로 하고 4명의 미드필더와 5명의 수비수를 배치한 것이다. (5 - 4 - 1 포메이션). 전원이 뒤로 쳐져서 수비를 하고 있는 동안 공격수 1명은 전방의 위치에 머물러 있는데, 자기편 골주변의 혼전에서 흘러나온 볼을 주운 자기편 선수가 전방으로 보낼때 목표 선수가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1명의 공격수를 '타케트 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포메이션의 변천이라는 긴 과정을 거쳐 마침내 도달한 것이 네덜란드를 발상지로 한 토털 사커다. 토털 사커는 끈질기게 따라붙는 상대의 맨투맨 마크를 깨뜨리는 방법임과 동시
에 선수 개개인의 위치에 구애됨이 없는 플레이, 이에 따른 유연한 전술 운영을 목표로 해서 생겨났다. 골키퍼를 제외한 전 선수는 '토털한' 선수로서 깊은 수비위치로부터 최전선의 공격에 이르기까지 어느 포지션이든지 담당할 수가 있으며, 공의 방향에 따라서 언제든지 자기편 선수끼리 포지션 체인지를 할수 있는 것을 당연히 여기게 되었다. 한 사람의 선수가 공을 쫓아서 그 자리를 떠났을 경우에는 다른 선수가 재빨리 그 포지션을 메우는 것이다.

이상 축구 포메이션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각 포메이션은 시대와 함께발전, 소멸의 길을 걸어왔다. 각 포메이션 중에서 지금도 쓰이는 것은 4 - 3 - 3, 4 - 4 - 2 정도이다. 포메이션의 역사에서 보듯이 수비 위주의 축구가 계속되면 언젠가는 축구 자체가 사멸할지도 모른다는 의견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축구 경기에서는 어느 순간을 보더라도 반드시 누군가가 공격을 하고있으며, 항상 흥분이 소용돌이 치고 있기 때문이다. 포메이션에 대해 분명히 말해두고 싶은 것은, 선수가 일단 필드에서 활동을 개시하면 포메이션의 설계도가 아무리 면밀하게 그려져 있더라도 그 설계도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플레이가 격렬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경기중에 선수 개개인이 특질이라는 것이 나타나기 때문에, 또는 설계도대로 움직이는 것을 치사하게 여기는 선수들의 성격 때문에 애초의 작전 계획은 차질을 빚을수 밖에 없다.

사실 축구는 전략이나 포메이션에 의해서 지배되는 경기가 아니다. 감독들 중에는 고도로 복잡한 이론체계에 맹목적으로 따를 것을 요구하여 선수의 개성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리 규율이 엄격한 감독이라도 필드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통제할수는 없다. 선수가 개인적인 성격에 따라 예기치 않은 사태에 나름대로 반응을 보이거나 행동을 취하더라도 감독은 사이드 라인 밖에 앉아있을 뿐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최근에는 전략 문제에 대해 놀랄만큼 다른 견해를 가진 감독들도 많이 나타났다. 선수들에게 경직화된 포메이션이나 고정화된 포메이션 따위는 일체 잊어버리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토털 사커로 인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토털 사커처럼 플레이 스타일이 유동적이 되면필드 전체에 걸쳐서 선수 스스로 상황을 판단해야하고 유연성, 기동력이 동시에 증대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상대가 수시로 위치를 바꾸며 현혹시키기 때문에 애초의 포메이션에 따른 경직화된 맨투맨 마크식 수비는 더이상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토털 사커 스타일의 유일한 단점은 선수들에게 이전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상호 이해력과 강인한 체력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그런 선수들만으로 구성된 팀이 만들어지고 선수들이 서로의 움직임에 본능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훈련된다면 이 팀은 매우 위협적인 팀이 될 것이며, 반드시 미래의 세계 축구에 새 시대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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